남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支石墓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옛날에는 사람이 언제부터
얼마나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1900년대부터 시작된 인구통계에서,
       남해군의 인구는 이때부터 점점 증가 추세를 보여 1964년에는 13만 7천 9백14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후 계속된 산업화의 영향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가구 수도 1969년 22,753가구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다가,
       최근에는 인구는 줄면서도 가구 수는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핵가족시대에 분가를 했기 때문이다.
       연령별로 65세 미만 인구는 감소하지만 65세 이상 노년층인구는 증가하여 장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행정구역은 1읍 9면 221리, 도서는 유인도 3, 무인도 73개 이다. 

    - 남해군 자연마을의 지명유래와 그 분포의 특성
        남해군 지역에 지금까지 전해내려오거나 현존하는 자연마을 지명과
        그 분포의 특성을 지리학 차원에서 연구하고 분석하여 조사한 내용입니다. 자료소개란에 있음

    - 남해 사람들의 근면성과 검약성
        이곳의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 말미암은 것이고 그 근면성으로 주어진 자연환경을 잘 이겨내어 
        제 고장을 나라 안에서 이름난 부자촌이 되게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일흔살 먹은 노인은 
        노인축에도 못 끼는 장수마을까지 생기게 하였다.
    
        

    - 장수마을
        198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이가 여든이 넘는 노인이 가장 많이 사는곳은
        제주도 북제주군이고 다음이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
이다.
     
     
    - 계단식 농토
        남해군은 평지가 좁은 터라 산 비탈을 일구어 만든 이른 바  계단식농토가 많다. 
        남면 가천마을이 대표적인 다랑이 마을이다. 해변산중이란 특징을 가진 이곳은 관광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남해군의 밭은 절반쯤이 마늘밭이고 나머지 밭의 삼분의 일쯤은 고구마밭이라고 할 수 있다. 
     
     
    - 남해 특산물
        남해군의 특산물로는 유자와 치자 그리고 비자를 꼽는다.
        거지와 글소경과 도둑이 없다는 뜻의 삼무와 합쳐서 남해군을 삼자 삼무의 고장이라고 한다.

    - 남해대교
        길이 660m이고 폭이 12m이며 높이가 60m인 현수교
이다.
        현수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가 그 상징처럼 되어 있는 다리이다. 
  
        

    - 유배지
        남해군은 예로부터 때를 잘못 만난 선비들의 유배지로 이름이 높았다.
        고려중엽부터 조선 왕조 말기까지 서른명이 넘는 유배객이 끊이지 않았다.
        서포 김만중은 상주면 노도
에 귀양와 세해를 살다가 이섬에서 죽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나라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산인 국문소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었다. 

  
  -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승람의 남해편은 솥밭처럼 우뚝한 하늘 남쪽의 아름다운곳 이라고 적혀 있듯이
        남해군은 산세가 뚜렷하고 기운차며 바닷물이 맑 좋은곳 중에고 따뜻하여 글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남해군의 여러 경치에서도 금산
예로부터 남해의 소금강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옛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신라때 중 원효가 이곳에 보광사 절을 지어서)

    - 택리지
        南海縣在慶尙固城海中距陸水路十里而內有錦山洞天卽崔孤雲所遊處孤雲所書大字尙留石壁上      
        남해현은 경상도 고성 바다 복판에 있어 육지와 물길로 10리 거리이다.
        그 안에 있는 금산동천은 최고운이 놀던 곳이며, 고운이 쓴 큰 글씨가 아직도 석벽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