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부터 영토 인식" 일본 주장은 허구 입증
17세기 중반부터 독도를 영토 일부로 인식해 왔다는 일본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대외교류연구원은 일본 해군 수로부가 1879년에 오키(隱岐) 열도 측량 당시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영토로 인식했음을 입증하는 19세기 일본 공식 자료를 8일 최초로 공개했다.
1879년에 일본 해군 수로부의 기모쓰키 가네유키가 제작한 '오키열도 측량보고서'인 '은기회항약기'(隱岐回航略記)에는 오키 열도의 위치를 북위 35도 57분∼36도 18분, 동경 132도∼133도 23분으로 기록했다. 오키 열도의 범주에 독도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오키 섬은 일본 시마네 반도의 북쪽 약 50㎞에 있는 섬으로, 독도에서 약 157㎞ 떨어져 있다.
한철호 대외교류연구원 원장(역사교육과 교수)은 "오키 열도를 포함한 북서안 측량의 책임자인 기모쓰키가 독도를 오키의 소도에 속하는 179개 섬 중의 하나로 인식했다면 그 북쪽 한계에 있었던 독도를 반드시 포함하고 북위와 동경의 위치도 넓혀 잡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원장은 "하지만 그는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 조선 영토라고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에 독도를 측량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을 뿐더러 '은기회항약기'에도 전혀 기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외교류연구원이 함께 공개한 '츠쿠바함 제3회 일본환해항적지도'에도 독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이 지도는 1879년과 1883년 츠쿠바함이 일본 환해를 항해하면서 전체 주항 경로를 표시한 것이다.
한 원장은 "이 지도에 울릉도와 그 부속 섬인 독도가 빠져 있는 사실은 수로부를 포함한 일본 해군이 독도를 일본 영토가 아니라 조선영토로 파악·인식했음을 방증해준다"고 했다.
그는 "1884년에 오키 열도를 측량한 가토 시게나리 역시 경위도를 북위 35도 55분에서 북위 36도 27분까지, 동경 132도 44분에서 동경 133도 31분까지라고 측량·보고함으로써 기모쓰키와 마찬가지로 북독도가 모두 오키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해군 수로부는 1882년에 수립된 '일본전국해안측량 12개년 계획' 아래 일본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모든 해도를 보유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측량을 추진하고 있었다.
한 원장은 "실제 측량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기모쓰키와 가토였다"면서 "따라서 해안 및 경위도 측량에서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기모쓰키에 이어 가토가 모두 오키열도를 정밀하게 측량한 뒤 그 범주에서 독도를 배제했던 사실은 그들 모두 독도를 조선 영토로 정확하게 인식 혹은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럼에도 해군성 수로부장 기모쓰키는 농상무성의 마키 보쿠신 수산국장, 외무성의 야마자 엔지로 정무국장과 함께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논리를 내세웠다"면서 "이는 스스로 양심을 저버리고 사실마저 왜곡한 억지 논리이자 궤변이었음이 확실하다"고 했다.
한 원장은 이러한 내용을 10일 동국대 다향관에서 열리는 '동해의 자원과 환동해 지역의 갈등'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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