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2년에 예수회 이탈리아인 신부 마테오 리치와 명나라 학자가  만들어 목판으로 찍어 펴낸 지도로서, 가로 533센티미터, 세로 170센티미터이며, 리치 지도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지도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묵와랍니가(오세아니아+남극)를 나타내고 있고, 각지의 민족과 산물에 대해 지리지의 방식으로 서술하였다. 우리나라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국은 간단하게 처리하고 역사적인 설명을 첨가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그려졌고 동해의 일본 쪽을 일본해, 태평양 쪽은 소동양이라고 표기하였다.  또 타원형의 세계지도 바깥에는 남반구와 북반구의 모습, 아리스토 천체 구조론에 의한 구중천설, 일월식도, 천지의도 등이 그려져 있다.

이 지도의 가장 큰 이슈는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점이다. 20세기 일제 강점기 이후 러일전쟁을 통해 독도와 동해를 다케시마와 일본해로 부르게 된다.  그런데 1602년에 동해(조선해)를 일본해로 표시한 지도는 이례적으로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는 실증이다.

회입 곤여만국지도는 판본이 아니고 손으로 그리고 채색한 지도이고, 지도의 여백에 기이한 동물과 당시의 탐험선 등을 그려 아름답게 장식한 지도이다. 우리나라에서 다시 모사한 회입 곤여만국전도는 현존하는 서울대학교 소장본과 6.25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남양주시 봉선사본, 일본 오사카의 남만문화관 소장본이 알려져 있다. 이 3점의 지도는 모사 과정에서의 차이는 있으나 지도의 내용과 최석정의 서문내용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모두 조선에서 모사된 지도임으로 사료된다.
  최석정의 서문에 의하면 숙종 34년(1708)에 서운감이 건상도와 곤여도를 모사하여 조정에 바친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곤여도는 회입 곤여만국전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입 곤여만국전도를 모사한 바로 2년 전인 숙종 32년(1706)에는 이이명이 요계관방지도를 만들었고, 18세기 중엽에는 서북계도, 서북피아 양계만리지도 등의 관방지도가 계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북방에 대한 관방지도의 제작과 예수교 선교사들에 의한 세계지도의 도입과 모사는 주변국가와 세계에 대한 시대적인 관심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