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말 명나라에는 바티칸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북경에 파견되는 조선 사신들은 그들이 한문으로 펴낸 책을 보면서 서양 세계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당시 북경에서 활약하던 선교사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였다.
마테오 리치가 동방 전도의 사명을 띠고 중국땅 마타오를  밟은 것은 1582년 7월이었다. 그에게는 중국인들을 놀라게 할 만한 서양의 최신 천문지리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전도를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다. 그는 오랜 기간 축적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문을 공부하고 중국 고전을 탐독했다.
마테오 리치는 1601년 북경에 거주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가받고 포교활동과 함께 최신 서양 과학을 소개하는데 힘썼다. 각종 저술들은 물론 동양권의 언어인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세계지도는 동양사회에 매우 특별한 문화적,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만든 지도는 크게 세 종류였다. 1584년 자오칭에서 만든 여지산해전도, 1600년 난징에서 간행한 산해여지전도, 1602년 북경에서 간행한 곤여만국전도가 그것이다. 목판으로 발간한 곤여만국전도는 6폭 병풍의 최신 세계지도였다. 
 이 지도는 많은 지명과 넓은 지도의 여백에 서양의 과학문명의 소개와 기독교의 교리, 서양의 역사와 사회 등을 기록하기 위해서 대형지도를 만들게 되었다. 곤여만국전도는 출간된 다음 해에 부경사 이광정과 권희에 의해서 발간 다음 해인 1603년에 조선에 전해졌다.

이 지도는 당시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이수광에게 전달되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그 내용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수광은 마테오리치가 발간한 산해여지전도와 왕기의 삼재도회 등을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보아, 당시의 서양문물에 대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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