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방안식지도인 비변사인 지도 중 영남지도 南海縣(그림 4)으로 영조대에 만든 경상도 각 군현지도이다. 각 군현을 1장씩 그려 전체를 6첩으로 묶었다. 備邊司印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사료되며 1767년(영조 43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읍치, 면, 하천, 산, 봉수, 봉수로, 역, 진, 참, 서원, 절 등이 표시되어 있으며 여백에 호구 수, 경지면적, 곡물, 읍치 및 경도로부터의 거리 등의 지지적인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지도의 산천 표현을 보면 산을 연속적인 줄기로 그리지 않고 독립적인 산으로 그려 넣었다. 읍치와 면이름을 사각형 내부에 기입하였는데 읍치는 내부의 공간구조를 그리지 않고 단순히 글자로만 표기하였다. 이는 지도상의 전 지역에 동일한 축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읍의 중심지와 그 안에 배치된 시설만을 확대하여 그릴 수 없는데서 기인한다. 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일반 지도에 비해 매우 자세한 편으로 이는 도로를 중시했던 영조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남해현은 창선면을 제외한 남해군 전체에 해당되며, 읍치는 남해읍 남변리·서변리·북변리 일대에 있었다. 고을의 鎭山은 읍치 위쪽에 표시된 望雲山(786m)이다. 지도는 서쪽(酉)을 위로 향해 그렸는데, 읍치가 서쪽의 산지를 등지고 동쪽을 향해 입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面 표시가 네모 안에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수록되어 여지도와 비슷하며, 섬 전체의 모습은 현재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다만 아래쪽(동쪽)의 ‘晋州昌善牧場界’라고 쓰인 부분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곳은 현재의 남해군 창선도로서 조선시대에는 진주의 越境地였다. 남해보다 훨씬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육지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남해현은 남해에서 황해를 잇는 해로에 위치해 있어 운송과 군사적 측면에서 모두 중요했다. 이와 같은 입지적 특징 때문에 水軍이 배치된 여러 鎭堡가 있었다. 지도에서는 面은 세로의 긴 사각형 안에, 鎭堡는 거의 정사각형 안에 이름을 써넣어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도에는 총 7개의 封山이 표시되어 있다. 封山이란 숙종 이후 戰船의 船材를 조달하기 위해 국가에서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시켰던 지역이다. 대부분 수군이 파견된 鎭堡가 있었던 해안가에 지정하여 관리하였다. 도별로는 수군이 파견된 진보가 가장 많았던 전라도와 경상도에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도의 오른쪽 露梁津이 표시된다. 도로 표시는 해안을 따라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지도에 표시된 지명은

갈도(葛島) 고동산선재봉산(顧東山船材封山) 고현면(古縣面) 곡포(曲浦) 금산봉대(錦山烽臺) 금산선재봉산(錦山船材封山) 금산선재봉산(錦山船材封山) 남면(南面) 노도(櫓島) 노량원(露梁院) 노량진(露梁津) 녹두산(鹿頭山) 대양(大洋) 대양(大洋) 덕신역(德新驛) 동천(凍川) 망운산(望雲山) 미조항(彌助項) 별망봉(別望烽) 보제암(普提菴) 삼동면(三東面) 상주포(尙州浦) 서면(西面) 선소(船所) 선재봉산(船材封山) 선재봉산(船材封山) 선재봉산(船材封山) 설천면(雪天面) 소흘산봉대(所屹山烽臺) 용문사(龍門寺) 원산봉대(猿山烽臺) 읍내면(邑內面) 읍치(邑治) 이동면(二東面) 조도(鳥島) 지족진(只族津) 지족진원(只族津院) 차면산선재봉산(車面山船材封山) 충열사(忠烈祠) 평산포(平山浦) 향교(鄕校) 화방사(花芳寺) 등 42개 지명이다.

 남해와 창선을 제외한 3개 섬(갈도(葛島) 노도(櫓島) 조도(鳥島))이 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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