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경표
『산경표』(山經表)는 그 글자의 뜻을 풀어 보면 '산줄기의 흐름을 나타낸 표'라는 뜻이다. 이 책에는 옛 문헌에 언급되고 지도상에 이미 표시되어 왔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았던 산줄기와 갈래를 알기 쉽도록 만든 지리서이다.
산경표의 저자인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은 조선조 후기 영조 때의 실학파 지리학자 중의 한사람으로 1754년(영조30)에 증광시 을과(乙科)에 합격(合格),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가 성균전적(典籍)을 지내고, 왕명으로『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便覽)』을 감수(監修)하여 그 공으로 승정원 동부승지에 뽑힌 후, 병조참지로 옮겨 "팔도지도"를 감수하는 등 관찬지리지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는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국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지리학사에서도 보기 드물게 많은 지리학자가 배출되고 뛰어난 지리서, 지도 등이 제작되던 시기였다.
"여지승람(與地便覽)"은 그 책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땅 모습을 보기 쉽도록 만든 책으로, 영조 45년(1769)에 간행(刊行)되었다.
『여지승람(與地便覽)』은 2권 2책으로 건책(乾冊)과 곤책(坤冊)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이중 건책이 바로 산경표(山經表)이다. 곤책은「거경정리표(距京程里表)」로 당시 서울과 각 지역간의 거리를 표기하고 있다.
내제목(內題目)이「산경표(山經表)」로 되어 있는 이『여지승람(與地便覽)』의 건책은 백두대간, 장백정간 등으로 우리나라 산줄기를 나누어 여기에서 다시 가지 친 기맥(岐脈)을 기록했으며, 모든 산줄기의 연결은 자연지명인 산 이름, 고개이름 등으로 하고 기술은 족보기술법을 따르고 있다. 수록된 자연지명은 모두 1,650여개이며, 이 중 산 이름과 고개이름이 1,500여 개이다. 산 이름의 기록은 산의 다른 이름과 그 산의 위치, 그리고 그 산에서 가지 친 또 다른 맥줄기의 수를 기록해 놓았다.
여기에 나타난 우리 산의 산줄기이름은 백두대간, 장백정간(長白正幹), 낙남정맥(洛南正脈), 청북정맥(淸北正脈), 청남정맥(淸南正脈), 해서정맥(海西正脈),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한북정맥(漢北正脈), 낙동정맥(洛東正脈),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정맥(漢南正脈), 금북정맥(錦北正脈),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남정맥(錦南正脈), 호남정맥(湖南正脈)이다.
2. 산경표(山經表)의 발간 시기와 시대적 배경
오늘날 우리가「산경표(山經表)」를 접할 수 있는 것은 1910년 최남선이 설립한 조선광문회의 고전 간행 사업 때문이다.
당시 조선광문회는 일본에서 발행된 온갖 신간서적과 우리의 귀중한 고문서를 수천권씩 보유하고 있어서 당시의 지식인들이 자주 회합을 갖던 장소였다.
조선광문회에서 1912년 6월 우리나라 지리서 중 인문 지리학의 시초라고 평가받고 있는『택리지(擇里志)』가 출판된데 이어 1913년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의「산경표(山經表)」가 출판되었다.
산경표가 여암 신경준(旅庵 申景濬)의 「산수고(山水考)」를 바탕에 둔 것이라는 조선광문회본의 발문(최남선)과 최근 연구자들의 논고에 대하여는 대체로 이의가 없다.
그러나 신경준이 이 책의 저자이며 이와 같은 산경 개념이 신경준 시대에 공적으로 인정받은 우리의 산수개념이라는 최근 논고에는 이의가 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 지리에 관한 저서로는 1904년 일본 동경의 환선 주식회사에서 발행한 『한국지리(韓國地理)』가 있었으며 이 책은 우리나라 산맥의 계통을 일본 동경 제국대학 이학박사인 고또 분지로(小藤文次郞)가 연구한 개요에 따라 서술하였고 지리 교과서에 사용되었다.
그는 1900년부터 1902년 사이에 2회에 걸쳐 우리나라를 방문해 14개월간 전국을 답사하면서 지형 연구를 하였으며 그의 이론은 지리학적인 분석이 아닌 지질학적으로 분석하여 명명한 것으로 이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통치, 지하자원과 농산물을 수탈하고 일본 기업과 민간인들의 국내 시장 침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민족정기를 말살시키기 위해 산경표의 지리개념을 배척하고, 태백산맥과 노령산맥 등을 비롯한 15개 산맥으로 왜곡시켜 놓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야욕 속에서 발행된 엉터리 산맥도로 우리 나라 지형, 문화, 풍습, 역사를 억지로 끼워 맞추어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산맥 명칭을 둘러싼 문제점을 우려하여 최남선과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山經表)」의 간행을 서둘렀다고 보여지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가는 우리나라 산줄기 갈래와 이름을 바로잡기 위한 민족적 저항 의식이 깔려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산경표 발간은 우리나라 고전을 보존, 전포(傳布)하겠다는 조선광문회 설립 목적이 가장 잘 실현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리 교과서에 실린 산맥의 명칭과 개요는 고또 분지로의 이론을 아무런 검토도 없이 그대로 따르고 있는 형편이므로 이것은 후학들이 연구 노력하여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3. 산경표의 가치
①. 산경(山經)과 수경(水經)의 명쾌함
산경표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지리를 사실에 근거하여 산줄기를 1백두대간과 1장백정간을 비롯하여 13개 정맥으로 나누고, 1,650여개의 산과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표기하고, 10대 강줄기를 유역별로 나누어 자세하게 수록해 놓은 우리민족의 전통지리서이다.
산경표"의 대간‧정간‧정맥에는 실제 우리나라의 산과 강에 대한 독특한 분류체계가 있다. 즉 "산줄기는 분수령을 따르게 마련(山自分水嶺)"이라는 줄기가름의 대원칙이 있었다. 즉,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오직 한길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산경(山經)이란 산이 끊기지 않고 이어가는 흐름, 즉 산줄기를 말한다.
산경도를 보면 대간과 그 아래 급의 산줄기인 정맥이 꾸불꾸불 달린다. 이들 산줄기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강(江)을 절묘하게 피해 간다. 어느 산줄기도 강과 교차하지 않으며 그 산줄기는 모두 한 몸같이 연결되어 있다. 산경도는 산줄기를 있는 그대로를 그린 그림이다. 따라서 산경도를 보면 산줄기와 강줄기의 흐름이 명쾌하게 드러난다.
강과 산의 흐름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두 능선이 만나는 곳 바로 좌우 밑에서 물이 시작되고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서 능선은 끝난다. 여러 능선 가운데 그 흐름이 바다에서 끝나는 것이 대간‧정간‧정맥이다. 따라서 이들 대간‧정간‧정맥에 의해 나뉘어지는 유역에는 반드시 하나의 강줄기가 흐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 낙동정맥, 낙남정맥에 둘러싸인 영남지방의 모든 물은 낙동강으로 모인다. 즉 이 지역은 모두 낙동강 물을 먹고사는 낙동강 수계(水系)이다.
한북정맥‧백두대간‧한남정맥에 둘러싸인 중부지방은 모두 한강 수계다. 즉 대간‧정맥들은 우리 나라를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수계로 나눈다.
산경이라는 항목은 우리나라 산과 강을 산경, 수경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는 신경준의 주요 저서를 모은 여암전서의 산수고에서 나타난다.
②. 산경표(山經表)와 생활문화
산경도의 산줄기를 보면 삼국시대 국경선의 흐름과 일치한다. 같은 호남지방이지만 호남정맥의 서쪽은 서편제, 동쪽은 동편제로 정맥을 경계로 소리가 다르다.
남해안 지방을 가로막는 호남정맥과 낙남정맥 북쪽은 태풍 피해와는 거리가 멀다.
산경표는 우리 조상들이 이전부터 사용해 오던 개념을 18세기 말 실학의 번성기 때에 집대성해 놓은 것으로 봐야한다. 산경표에 의한 실제의 산맥과 명칭은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인이 만든 그들만의 목적 개념에 의해 왜곡되면서 "잊혀진 산줄기"가 된지도 어느 듯 90여년이 흘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리교과서에 실린 산맥의 명칭과 개요는 일본인들의 목적과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연구 노력하여 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산경표를 알지 못하고 한국지리를 공부하는 것은 뿌리는 알지 못한 채 가지만 연구하는 꼴이라고 볼 수 있다.
산경표에 따른 지역 분류는 실제 등산이나 여행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과거 우리의 역사‧문화 등을 아는데도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산경표를 알고 나면 비단 지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함에 있어 교통문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내륙 교통로가 덜 발달했을 때 사람들은 통행이나 운송의 상당 부분을 육운(陸運)보다 해운(海運)에 의존했다. 따라서 같은 대간‧정간 등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같은 물을 쓰기 때문에 동일한 경제권과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한다.
4. 결론
세계 수많은 민족 중에서 우리 민족처럼 산줄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지형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 민족이 또 있을까?
산경표는 요즘 들어 그 자료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문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맥 명칭과는 다른 백두대간, 장백정간 등의 산줄기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백두산을 정점으로 하는 산줄기의 분포 등이 기술되어 있으며, 나아가 백두대간 등 우리 고유의 산줄기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1) 산경은 전국토를 대상으로 자연지리에 바탕을 두고 지형지세를 과학적으로 정립했다는 의미에서 실학의 소산으로 보고,
2) 대간, 정간, 정맥의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비롯된다. 이 땅의 근골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으로서 모든 수계를 크게 동서로 양분한다.
3) 정맥은 대간에서 가지쳐 나온 이차적인 산줄기로서 큰 강의 유역 능선, 즉 분수능선이다.
4) 기맥은 명칭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간과 정맥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산줄기로서 내(川)를 이루는 분수릉이다.
5) 산줄기의 연결, 즉 대간과 그에서 뻗은 모든 정간은 물뿌리(水分岐)로서 모든 생명체의 시작인 물의 산지라는 인식이었다.
6) 산경은 이 땅 모든 생활권역의 자연스런 분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각 지방 또는 지역의 경계를 두고 우리는 크게 북부, 중부, 남부지방으로 나누고, 영남, 호남, 영동 지방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필사본. 1책. 18.3×28.7cm.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친 대간(大幹)과 지맥(支脈)의 분포를 기재한 것으로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이 작성하였다. 1913년 최남선(崔南善) 편으로 조선광문회에서 신활자로 간행한 것이 각처에 소장되어 있다.